욱일기 펄럭이는 일본 극우들... 엄중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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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펄럭이는 일본 극우들... 엄중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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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를 관통하는 이념적 조류는 '극우'였다. 메이지 시대의 주역들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와 식민지 수탈을 전제로 한 제국주의를 신봉했다. 일본 우익의 정신적 스승으로 칭송되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한반도 정벌론을 주창한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와 키도 다카요시(木戶孝允), 최초의 우익결사 단체를 설립한 도야마 미쓰루(頭山 満)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는 "일본 극우의 뿌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라고 볼 수 있고, 그가 뿌린 대륙정벌의 꿈은 에도시대에도 이념적 명맥을 이어갔다"라고 말한다.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국가(中國)라는 주장을 펼친 야마가 소코(山鹿素行), 한반도 침략은 신의 뜻이라며 도요토미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세계를 정복해 모두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외친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가 그들이다.

이들로부터 정신적 세례를 받은 자들이 메이지 정부의 주축이었고 따라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을사늑약, 강제 병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보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뿌리를 살펴보면 다양한 갈래가 존재하지만, 일본이 세계의 중심으로 서려면 다른 나라를 정복해 속국(屬國)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고 이 이념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향철 교수(광운대)는 "근대 일본의 우익이나 극우의 기원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정치사회경제적 변화의 자장 안에서 찾아야 하고 특히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真男)가 끼친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고 최후의 일인까지 천황의 말 앞에 쓰러져 죽어야 한다고 외쳤던 제국주의자다.

오늘날 그는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실천적 계몽주의자로 추앙받고 있다. 명문사학 게이오대학 설립자이며, 현재 통용되는 일본 지폐 중 최고액권인 1만 엔에 그려진 초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일본 극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자임하던 그가 일제 패망 후 어떻게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근대 일본의 아버지로 둔갑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 일본 학계의 '천황(天皇)'으로 불리는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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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는 일본 정치사상사의 권위자로, 전후 일본 학계의 사상적 구심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학자이자 양심적 지식인인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2015/이향철 역)에서, "마루야마가 후쿠자와의 저작들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해 보여줌으로써 그를 일본 근대화의 스승이며 위대한 민주주의 사상가로 미화했다"라고 고발한다. 사실관계에서 유리된 허구적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마루야마의 학문적 권위에 힘입어 후쿠자와는 일본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킨 인물로 각인된다. 백성을 '바보'라 칭하고, '배움을 얻은 가난한 민중이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주장한 자가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변신하는 사이, 일본의 연구자들은 침묵했다. 이향철 교수는 "마루야마의 영향 밑에서 공부한 한국 학자들 역시 주체적인 역사관 없이 그의 생각을 국내에 전파함으로써 학문적 식민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라고 일갈했다.
 
조관자 교수(서울대)는 쇼와(昭和) 시기의 일본 우익사상에 대해 발제했다. 일본에서 쇼와 시대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 64년에 걸친 기간을 말하며, 1945년을 기점으로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로 구분한다. 쇼와 전기(前期), 일본은 극심한 사회불안에 시달렸다.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의 여파로 농업 생산성이 추락하면서 쌀 파동(1918년)이 일어났고, 의회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분출되면서 정당정치가 붕괴했다.

제2의 유신을 통해 국가를 개조하고 분열된 국민사상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쇼와 유신(維新)'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이 시기에 기타 잇키(北一輝),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 같은 우익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기타(1883∼1937)는 "천황 친정체제를 세워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라며 쿠데타를 일으킨 청년 장교들에게 사상적 배경을 제공했고 일본을 개조해 아시아연맹을 구축하고 폭력혁명을 통해 세계연맹을 건설하자고 주장한 이상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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