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온갖 갈등, 대화로 풀어낸 옴니버스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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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온갖 갈등, 대화로 풀어낸 옴니버스 실험

sk연예기자 0 90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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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상업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극장문 열려는 시도의 최신판
 
한국 독립영화의 제작 및 상영 관련해서 복수의 단편들을 조합해 옴니버스 장편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목격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주로 특정 주제 혹은 '현장'에 착목하는 기획으로 진행된다. 예전에 비해 대안사회운동과 연계하는 대규모 기획제작은 찾아보기 쉽지 않긴 하지만, 21세기 들어 밀양이나 용산, 성주 등의 강제개발과 철거현장을 배경으로 명맥을 잇는 중이다. 극영화의 경우는 소재나 테마의 유사성 외에도 배급단위가 주도해 기존 단편 형태로는 불가능한 극장개봉을 위한 기획 편성 등 보다 다양한 요구에 의해 관련 작업이 활성화되는 중이다. 그런 모색 가운데 가장 최근작이라 할 <말이야 바른 말이지>가 공개되었다.
 
해당 프로젝트는 대개 별개의 단품 형태로 완성된 후 적당히 비슷한 테마에 맞춰 조합되곤 하는 유사한 시도들과 달리 개별 에피소드 작업들이 처음부터 통합된 주제와 형식으로 제작되는 차별성을 일관되게 견지한다. '쇼츠 챌린지' 프로젝트 형태로 명명된 작업방식을 통해 규격화를 시도한 것이다. 프롤로그를 제외한 10분여 전후의 5개 단편영화들은 아래에 서술된 공통 원칙에 입각해 제작되었다.
 
① 1개의 신만으로 이야기 종결
② 동일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③ 전체 분량을 6시간 내로 촬영 완료
④ 등장인물은 인간과 동물을 막론하고 3명 이하로 제한
⑤ 극중 대화는 2명만 나눌 수 있다
 
상기한 제약 하에 전체 에피소드 작업이 이뤄졌다. 그 결과 조금만 삐끗하면 6인 6색 중구난방 되기 딱 좋았을 <말이야 바른 말이지> 프로젝트는 그저 적당히 분위기 봐가면서 단품 조합으로 그치지 않은 것은 물론, 시사적인 주제와 극도로 단순화된 형식의 통일성을 일정 부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성별과 세대, 경력 차이가 적지 않은 개별 감독들이 각자 단편 에피소드를 주관했기에 작업들 간의 온도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엇박자가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균형 유지능력이 만만찮은 편이다. 그리고 시작을 여는 프롤로그와 문을 닫는 마지막 단편이 수미상관을 이뤄준 덕분에 옴니버스 기획이 전달하려는 주제의식과 방향의 일관성을 사수할 수 있었다. 이게 말로는 당연한 결과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힘든 경우다.

독립영화라고 뭉뚱그리긴 하지만 정작 개별 작가의 지향과 초점은 실로 백화제방 격인 요즘 영화판에서 이만큼의 밸런스 패치는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기획 단계부터 배급까지 전 과정을 올인원 형태로 서울독립영화제가 주도한 통합력과 함께 총괄 PD 역할을 감당한 윤성호 감독의 기조 유지가 빛을 발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프로젝트의 기원이라 할 오프닝 단막극의 압도적 몰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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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여는 애피타이저 성격인 윤성호 감독의 <프롤로그>는 실은 재활용에 가까운 경우다. 이 짧지만 지독하게 신랄한 풍자 단막극은 2018년, 민주노총이 제작을 지원한 유튜브 채널 '시트콤협동조합'의 5부작 웹 드라마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의 외전인 <두근두근 외주용역>으로 제작되어 공개된 바 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의 도입부는 이 번외 단편을 그대로 삽입했다. 만들어진 지 벌써 5년이 넘은 작업이다 보니 뒤따라 등장할 5편의 신작들과 엇박자가 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면 이 도입부야말로 <말이야 바른 말이지>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본색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기업 인사담당자인 '김과장'과 외주용역업체 대표인 '양사장'이 도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직원 부리기 꿀팁을 공유한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둘의 대화를 주도하는 건 하청업체 양사장이다. 그리고 김과장은 맞장구를 쳐가며 점잖은 원청 행세에 여념이 없다. 어떻게 하면 하청 노동자들이 단결해 권리 찾기에 나설 수 없게 갈라치기하는지 양사장이 실전 노하우를 늘어놓고 김과장은 지독하다면서도 감탄사를 내뱉는다.

과거 노동운동이 고양되던 시절에 비해 훨씬 복잡해지고 세분화된 노동구조가 설명되고, 노무관리가 어떻게 분할지배를 고착화시키는지 스크린을 응시하던 관객들은 넋을 놓은 채 빠져들고 말 테다. 둘은 척척 죽이 맞는 사이 같지만 내심으로는 은밀하게 상대를 경멸하는 중이다. 악역을 자임한 양사장이지만 '마음의 소리'를 통해 자신을 이렇게 악독하게 만드는 건 뒷짐 진 채 모든 노무책임에서 면책된 대기업의 원죄라는 것을 화면 너머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제는 다양한 공간에서 맛깔난 감초 연기자로 자리잡은 양사장 역 양현민 배우의 눈부신 열연에 힘입어 이 인상적인 오프닝은 시리즈 전체의 주제의식을 정말 '한 큐'에 풀어낸다. 1997년 국가부도의 날 이후 도래한 신자유주 치하의 한국사회와 노동의 현주소를 불과 몇 분 만에 눈에 선하게 그려내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작품 형식면에서도 <프롤로그>는 본 작품의 특색인 '쇼츠 챌린지'의 원형질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어질 다른 단편들에서도 시트콤 협동조합 작업에 참여했던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이 다수 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옴니버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탄생의 기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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