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성공한, 지독히 외로웠던 집념의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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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성공한, 지독히 외로웠던 집념의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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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외국에 나오면 무슨 수가 생기겠니. 예술이 또한 무어 대단한 거겠니. 나도 모를 일이다. 그저 가슴에 무슨 원한 같은 게 맺혀 있을 뿐이다. 뭐니 뭐니 해도, 끼니를 거르고 죽을 먹더라도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 화가 김환기가 뉴욕에 있을 때, 고국의 딸에게 보낸 편지다. 그가 한국 미술로 승부를 걸어 보겠다고 파리와 뉴욕에 가 있는 동안, 한국에는 노모와 어린 세 딸이 있었다. 자책의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괴로움 속에서도 외국에서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이 세대 예술가들. 우리 역사와 문화가 무시받고 짓밟힌 시대를 경험한 세대. 이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의 우수성을 만방에 떨치고 싶다는 열망은, 나 그리고 나라의 자존심 문제였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짊어진 소명을 안고, 전쟁 후 수많은 화가가 파리로 몰려갔다. 성공을 거둔 이는 많지 않았다. 심지어 김환기조차도. 파리를 떠나며 김환기가 “자네는 파리에서 뼈를 묻게”라고 당부한 화가가 있었다. 남관(1911~1990)이다. 파리에서 14년을 체류하며, 결국 성공해 돌아온 화가. 그러나 실로 파란만장했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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