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칼럼] 연설이 아니라 ‘질의응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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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칼럼] 연설이 아니라 ‘질의응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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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칼럼

“아하, 그런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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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팀

[전성철의 글로벌 인사이트] 연설이 아니라 ‘질의응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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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특이한 점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별 특별한 악재도 없는데도 지지율이 일관되게 초라한 수준에 머물러 왔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시민의 입장에서 한번 분석해 본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을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 총리는 ‘행정’ 하는 사람이고 대통령은 ‘행정’과 ‘통치’를 다 하는 사람이다. 통치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국민의 마음을 사는 활동’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단연코 ‘통치’이다. 국민의 마음이 떠나 버리면 ‘행정’은 별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민주국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윤 대통령의 ‘통치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유추할 수밖에 없다. 통치의 핵심이 무엇인가? 국민에게 ‘꿈’을 주고 그의 실현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좋은 예이다. 그는 집권하자 국민에게 ‘잘살아 보세’라는 꿈을 던졌다. 진심으로 매진하는 그의 모습은 국민에게 기대감을 주었고 실제 성과를 내자 지지도는 속등했다. ‘3선 개헌’까지 허용했을 정도다. 그 ‘10월 유신’이라는 영구 집권 시도가 모든 것을 다 묻히게 해버렸지만, 그 이전은 사실 꿈을 활용해 통치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미국 대통령 중에는 케네디가 좋은 예다. 그가 선거 때 던진 ‘꿈’은 바로 ‘새로운 국경(New Frontier)’이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마음의 국경을 넓히자’는 것이었다. 흑인을 포함한 모든 인종, 약자들을 포용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케네디가 이 꿈을 향해 진심으로 뛰는 모습, 그것이 지지도를 거의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어떤 꿈을 던졌던가? 그가 선거 때 던진 ‘꿈’은 바로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꿈은 취임과 함께 골방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거의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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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현의 예술여행] [4] 영국 런던의 프레디 머큐리 자택 ‘가든 로지’

이른바 어렸을 때 ‘꽂힌’, 혹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던 음악이 평생 지속된다고 들었는데, 나이가 든 요즘 그 말을 실감한다. 나의 경우에는 록그룹 퀸(Queen)의 음악이다. 처음 입문했을 때는 여전히 퀸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여전히 인기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비롯해서 ‘위 윌 록 유’ ‘위 아 더 챔피언’ 등 명곡들도 좋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들도 주옥같았다. 입문 후 그들의 과거 음반을 찾아 들으면서 나름 원대한 꿈을 꾸었다. 대학생이 되면 퀸의 공연을 실제로 보러 가겠노라는 꿈이었다(1986년 ‘매직 투어’ 이후,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발병으로 투어 공연을 멈춘 상황이었지만,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알 길이 없었다). 1991년 ‘이뉴엔도’ 앨범을 발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렸음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그다음 날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대학 입시를 치르기 며칠 전이었다. 이후 그의 집 ‘가든 로지(Garden Lodge)’ 앞 담벼락이 수많은 팬들의 추모 낙서들로 가득 차 있던 풍경을 한참 후 영상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결국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여전히 ‘극성 팬’으로서 퀸의 음악을 즐겨 듣던 중, 영국 런던에 한동안 체류했던 때가 있었다. 이 기회를 빌려 런던 사우스 켄싱턴에 위치한 프레디 머큐리의 집을 찾았다. 담벼락의 낙서를 쓴 팬들처럼 나 또한 그의 집 앞에서 일종의 ‘추모’ 시간을 갖고 싶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집은 사후 과거 ‘여사친’이었던 메리 오스틴이 상속을 받았다. 과거 뒤덮여 있던 담벼락의 낙서는 모두 지워졌는데, 그래도 드문드문 남은 과거 낙서의 흔적이 이곳이 프레디 머큐리의 집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조용한 봄날의 오후였다. 이어폰으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개인적인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얼마 전 메리 오스틴이 ‘가든 로지’에 보관하고 있던 프레디 머큐리의 유품들을 경매에 내놓아 판매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작곡할 때 사용했던 피아노와 악보 등 한자리에 있던 기념비적인 유품들이 경매를 통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퀸의 남은 멤버들은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렇게 하나의 시대가 흘러감을 느낀다. 신이시여, 아름다운 음악들을 지켜주소서. 가드 세이브 더 ‘록그룹’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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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68] 중국 판 “누가 기침 소리를 냈는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 한자(漢字) 속 여인들은 늘 꿇어앉아 있다. 여자를 가리키는 글자 ‘녀(女)’의 본래 꼴을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얕보거나 깔보는 흐름의 새김이 두드러진다. 이 한자의 우리식 훈이 또한 ‘계집’이다.

더 억울한 일도 있다. 좋지 않은 뜻을 지닌 한자 행렬에는 이 ‘계집 녀’를 부수로 쓰는 경우가 흔하다. ‘종놈’, ‘종년’을 가리키는 단어 노비(奴婢)의 두 글자가 우선 그렇다. 간사하다는 새김의 간(奸)도 눈에 띈다.

간통을 하면 남성의 잘못도 클 텐데, 그 행위에는 글자 셋을 겹친 간(姦)이 쓰인다. 기생의 기(妓), 시샘할 때의 지칭인 질(嫉)과 투(妬)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질투가 때로는 여성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때가 많은데도 말이다.

여성의 이름으로 쓰는 좋은 뜻의 글자도 많다. 또 아내를 일컫는 처(妻), 아이를 배는 임(妊), 좋다는 뜻의 호(好) 등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글자도 있다. 그럼에도 ‘꿇어앉은 여성’이라는 본래 꼴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요망(妖妄), 망상(妄想)의 ‘망’은 쓰임이 많다. 거짓과 엉터리를 가리키지만 함부로, 멋대로 등의 뜻을 지녀 부사로도 곧잘 쓰인다. 공산당이 “중앙의 결정에 함부로 지껄이다”는 뜻의 ‘망의중앙(妄議中央)’을 경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광화문뷰] 부업 정치로 생계형 정치를 감당하겠나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문을 두드린 건 2005년쯤이다. 무명 변호사에서 갑자기 성남시장에 경기지사를 거쳐 대선 후보까지 됐다고 알지만 그렇지 않다. 40세에 정당 생활을 시작해 2007년 대선 경선 때는 정동영 캠프 핵심 공격수로 참여했고 풍비박산 난 대선 캠프 뒷정리도 그의 몫이었다. 이렇게 정치 훈련을 한 그는 2010년 성남시장이 됐고 이후는 모두 아는 대로다. 변호사라는 부업이 있었지만 근 20년간 그는 전업 정치인이었다.

민주당은 운동권 정당이면서 전업 정치인, 생계형 정치인들의 정당이다. 학생운동을 거쳐 30대 초반에 정당에 들어온 이들은 보좌관, 당직자로 10년 이상 도제식 훈련을 받는다. 학생회 선거부터 대선까지 머리와 몸으로 선거를 배우며 선거 머신으로 단련된다. 정당 사무실에서 복사하고 청소하고 논평 자료를 정리했던 이 청년들은 몇 년 뒤 국회의원으로 점프했고, 정권을 잡자 교육부, 국토부, 문화부, 중소기업부 장관을 했다. 공부 안 하고 세금 제대로 내본 적 없다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이들은 바닥부터 국회와 정부를 보고 배운 생계형 정치인이다.

생계형 정치인들에게 당선은 천국, 낙선은 지옥이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 정권을 잡으면 자리와 금전 보상이 따르고 정권을 빼앗기면 바로 실업자다. 문재인 정권 말기에도 연봉 1억원 이상의 자리가 나면 끝없이 낙하산으로 들어갔고 일부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이처럼 생계 유지는 숭고하면서 구차한 일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부분 부업형 정치인이다. 정치가 아닌 자신의 분야에서 수십 년 경력을 쌓아, 50대나 늦으면 60대에 정치에 뛰어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였고 김기현 대표는 판사였다. 원내대표와 전·현직 사무총장 모두 경찰이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은 상위 0.1% 공무원 출신이다. 긴급 투입된 혁신위원장 인요한은 의사다. ‘당선 천국, 낙선 지옥’의 생계형 정치인들과 달리 부업형 정치는 ‘당선 천국, 낙선 유턴’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이들은 그리 절박하지 않다.

물론 검찰, 법원, 경찰, 병원, 대학에도 정치는 있다. 검찰총장, 법원장, 대학 총장 정도 하면 “나도 정치 좀 안다”고 한다. 그러나 엘리트 집단의 내부 정치와, 유권자가 무학(無學)부터 박사까지 다양한 프로 정치 세계는 장르부터 다르다. 물에 뜬다고 다 수영이 아니다. 정치는 우리 편을 늘리고 적을 줄이고 국민 마음을 사서 정권을 잡고 운용하는 전문 분야다. 3류니 뭐니 욕하면서 계속 보는 게 정치다.

[신상목 스시 한 조각] [156] 만주의 유대인 자치구

1930년대 들어 만주국 경영에 나선 일본은 악화되는 영·미 관계 개선 방안에 골몰한다. 이때 은밀하게 추진한 비책(秘策) 중 하나가 유대 세력을 포섭하여 일본의 조력자로 삼는 방안이었다. 종교나 역사에 기인한 반유대 정서와 거리가 있는 일본은 유대 민족을 보는 시각이 유럽국과는 전혀 달랐다. 러일전쟁 당시 미국의 유대계 금융가 제이컵 시프의 협조로 천신만고 끝에 전비를 조달할 수 있었던 경험도 유대 인식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치의 발흥으로 유대인의 유럽 엑소더스가 가시화되자 만주국 경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던 닛산 콘체른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유대 전문가인 육군의 야스에 노리히로(安江仙弘), 해군의 이누즈카 고레시게(犬塚惟重) 등은 만주국(또는 상하이)에 유대인 집단 거주지를 조성하는 구상을 한다. 유럽에 발이 묶인 유대인 수만 명을 받아들여 자치권을 부여하는 한편, 그 대가로 유대 자본을 유치하고 미국의 금수 조치 완화를 위한 막후 협조를 얻는다는 발상이었다.

이들의 구상은 1938년 12월 오상(五相) 회의(총리·재무·외무·육군·해군 대신이 참석하는 최고위 정책 협의체)에서 채택한 ‘유대인 대책 요강(要綱)’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구상은 ‘복어[河豚] 계획’으로도 알려졌다. 맛있지만 맹독을 조심해야 하는 복어처럼 유대인의 가공할 영향력을 일본의 국익에 활용하되,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주국 거주 유대인들로 결성된 극동유대인협회를 창구 삼아 미국 내 유력 유대인을 대상으로 암암리에 로비를 벌였으나,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 일본의 구상은 설 자리를 잃는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일본의 구상이 열매를 맺었다면 만주 어딘가에 유대인 자치구가 존재했을 수도 있었던 격동의 역사가 멀지 않은 시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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